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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건설업계 재하청 관행을 잡겠다고 나섰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앞으로 불법하도급 사실이 적발될 경우 해당 하청업체는 물론, 원청사와 발주사까지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20일 불법하도급 단속 결과 브리핑 자리에서 "건설사들의 불법성 인식이 낮고, 정부와 발주자의 단속이 부실해 불법하도급이 횡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하자 많은 집에 살게 되고, 건설현장 근로자들이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재하도급, 재재하도급을 불법으로 규정한 주된 이유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용역비가 줄어 마지막 단계에서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이 적어지고, 현장 컨트롤타워 부재 하에 책임 소지가 불분명해져 부실공사,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내 LH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현장(AA13-2블록, AA21블록)에서 터진 철근 누락 사태들의 배경에도 재하도급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건설현장의 불법하도급은 결국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가 예의주시해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본시장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고, 돈은 펜보다 강한 시대다. 피땀 흘려 일한 근로소득보다 눈 비벼가며 숫자 움직이는 화면을 쳐다보고 번 터치소득이 더 많은 세상이다. 자본시장 내 범죄 행위는 수많은 가정들을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내몬다. 울고불고 사정해도 소용 없다. 피의자가 행위가 불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상 '투자 결과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이 부담합니다'라는 전가의 보도 앞에 속수무책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관련 책을 사서 직접 공부를 하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금융통계정보시스템 등에 기업들이 공개한 회사·상품 정보들을 꼼꼼하게 살핀다. 그런데 만약 투자자들이 산 도서와 금융당국이 공개한 자료에 담긴 기업 자체 생산 정보들이 사실은 재하청업체가 용역을 받아 생산된 정보라면,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과연 그 정보를 신뢰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대형·중소형 회계·세무법인에서 일하는 속칭 '사짜' 대학 동기들과 만나 회포를 풀었다. 기자 생활을 한 번도 맡은 적이 없었던 금융 분야를 담당하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각자 사는 얘길 간단히 하고 이제 일 얘기로 넘어가는데, 회계사와 세무사에게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최근 3~4년간 인력난이 계속되자 몇몇 대형 회계법인들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거나 규모가 작은 업체에 대한 회계·세무·감사 업무를 외부 회계·세무사들에게 용역을 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자리에 있는 회계사도 알고, 세무사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중 회계사 지인은 직접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최근 국내 굴지의 재벌 대기업 A사를 담당하고 있는 대형 회계법인 B사가 외부 세무사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여 PT를 진행했는데,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은 A사 소속 소규모 사업장의 세무 업무를 처리할 만한 업체를 정하는 것이었다. 이날 PT에 참여한 세무사들은 자기소개와 함께 어떻게 이 사안을 처리할 것인지 발표했다고 한다. 술자리에 있던 세무사 지인에게 물어보니, 다른 회계법인에서 자신도 이와 비슷한 PT 영업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A사와 B사에 문의해 봤다. 양사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서로 말이 다르다. 의혹에 불과한 일이다. 사실이라고 해도 위탁자인 원청이 재위탁에 동의했다면, 재위탁 사유 등을 원청인 위탁자의 이사회에 제출해 사전 승인을 얻는 등 일련의 절차를 밟았다면,불법성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 중요한 건 자본시장 구성원들, 특히 투자자 보호라는 생각이다. 재위탁이 만연한다면 투자 정보의 정확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고, 책임 소지도 불분명해져 예상치 못한 금융 사건·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정보의 비대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악용될 수도 있다. 회계법인만 바꾸고, 재위탁사는 그대로 쓰는 식으로 말이다. 회계·세무·감사 업무의 재위탁은 결국 국민경제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금융감독원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 재무제표 심사제도가 시행된 이후 엄격한 회계감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기업회계의 정확도가 높아졌다고 자평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일선 현장에서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보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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