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소재 A아파트엔 멈춰선 엘리베이터가 1대 있다. 단지 안과 밖을 연결하는 계단 옆에 위치한 시계탑 내부에 설치된 공용 엘리베이터인데, 준공·입주 후 1년이 훌쩍 지났지만 단 한 차례도 가동된 적이 없다고 한다. 사전점검 때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000세대 이상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인데, 애초에 준공허가가 어떻게 떨어졌는지도 의문이고, 시행·시공사의 하자보수 작업이 진작에 이뤄졌어야 할 사안인데, 왜 1년 넘게 고장 상태로 방치했는지도 의문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A아파트를 지은 건설사는 2023년 시공능력평가 `40위를 기록한 라인건설, 사업시행자는 라인건설 계열 이지종합개발(대주주 라인산업)이다. A아파트 입주민들은 입주자대표회의가 공식 출범한 이후부터 약 1년간 양사에 줄기차게 엘리베이터 수리를 요청했다. 수차례 공문과 내용증명이 발송됐다. 그러나 라인건설과 라인산업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입을 연 건 올해 7월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승강기 안전검사를 받아 그 결과를 라인산업에 내용증명을 통해 통보한 직후였다. 해당 내용증명엔 '정기 점검 결과 시계탑 외부 승강기는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2023년 11월까지 재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에 따라 발생되는 모든 불이익은 귀사의 책임이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그러자 라인산업은 다음과 같이 회신했다고 한다. '입주 후 천재지변으로 인한 고장이어서 하자 처리 대상이 아님.' 입주 개시 뒤 내린 집중호우로 엘리베이터에 물이 들어가 고장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하자보수 책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전점검 때부터 작동하지 않았다는 걸 1000세대가 넘는 입주민들이 직접 목격했는데, 1년 이상 엘리베이터를 고장 상태로 방치하곤 뚱딴지 같은 말을 늘어놓으며 '배째라'식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후에도 라인건설·라인산업이 이 같은 태도를 고수하자 A아파트 입주민들은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지역구(서구 을)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을 찾아 민원을 제기했다. 신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상임위원장(보건복지위원회)을 지내고 있을 정도로, 현 야권에서 나름 '끗발'이 있는 정치인이다. 그의 주재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라인건설·라인산업 관계자간 만남이 지난 8월 이뤄졌다. 이 자리엔 신동근 의원실 보좌진과 구의원 등도 동석했다.

국회의원이 뜨자 라인건설·라인산업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이 미팅에서 양사 관계자들은 '하자 처리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회신이 나간 시점에는 고장 원인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다', '내용을 바로잡아서 다시 회신 공문을 준비해 발송하겠다', '다음 회의까지 시계탑 엘리베이터 정상화 계획과 일정을 마련하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난 12일 라인산업은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승강기 사용 중지 원인을 재검토한 바 입주 초 엘리베이터의 주요 메인기판의 우수 유입으로 사용이 중지된 사항을 확인했기에, 당초 자연재해에 의한 발생 건을 정정해 시공사의 하자 사항으로 정상 가동을 할 수 있도록 조치 예정이오니 업무에 참조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여전히 입주 후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이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승강기 하자보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아울러 최근에 철수한 바 있는 공동주택 A/S팀도 단지 내에 재상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을 본지에 제보한 독자는 A아파트의 한 입주민이었다. '정상화가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제보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는 우리와 같은 불행한 입주민이 없었으면 한다. 라인건설이나 동양건설산업(라인건설 관계사)이 분양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에게 꼭 조언해주고 싶었다. 시간 끌 필요 없다. 국회의원과 국토교통부에 즉시 민원을 제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최근 수년간 벌어진 아파트 붕괴사고, 부실시공·대규모 하자 논란 속에서 우리나라 대형 건설사들이 입주예정자·입주민 앞에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정치인·고위공직자 앞에선 쩔쩔매는 걸 보면, 꼭 라인건설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국회의원이 아니라 고객을 무섭게 여기는 기업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온라인 검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