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운반비 인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펼쳐지고 있다. 생존권을 명분으로 앞세워 10%대 인상률을 요구하는 레미콘 운송사업자,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는 레미콘 제조업체간 운송단가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안인 만큼, 양측이 합의를 이루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전국 곳곳에서 건설현장 셧다운 사태가 발생할까봐 우려스럽다. 이미 제주 지역에선 한국노총 레미콘운송노조 제주지부 소속 노조원이 파업에 들어가 일대 공사 현장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줄곧 부동산 부양 정책을 통해 내수 시장 확대를 이뤄왔다. 나라 안팎에서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부동산 부양이 국가경제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설사, 은행 등 대기업들만 이득을 본 게 아니다. 가구업체, 인테리어업체, 이사업체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떨어진 콩고물을 먹으며 생존해 왔다. 투기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동산 중심 내수 경제구조를 바꾸는 게 사실상 힘든 실정이다. 전체 국민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좋든 싫든 간에, 이제는 부동산이 무너지면 국가경제가 통째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 이번엔 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이 한 발 양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1997년 IMF 사태급 경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국민 체감 경기가 너무 좋지 않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이른바 3고 현상으로 국민 대다수의 소비가 위축된 상태다. 건설·부동산을 다루는 기자 입장에서는 부동산 경기 침체도 소비 위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 자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의 매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팔려야 돈이 되는데, 팔린다고 확신할 수 없다면 지갑을 굳게 닫기 마련이다. 콘크리트는 필수 건축자재다. 레미콘 운송비까지 인상된다면 공사비가 또다시 급상승해 부동산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다. 각종 인프라 구축 비용도 급증하리라. 국민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공산이 크다.

더욱이 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은 파업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빼들며 매년 운송단가를 끊임 없이 높여 왔다. 최근 5년간 레미콘 운반단가(수도권 1회전 기준) 인상률(전년比)은 2019년 5.6%, 2020년 9.6%, 2021년 8.7%, 2022년 13.8%, 2023년 9.4% 등 50%에 육박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거졌던 이 시기, 과연 50% 수준의 연봉 인상률 또는 매출 상승률을 얻은 월급쟁이나 자영업자가 얼마나 될까. 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이 운반단가 인상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생존권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경제 위기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은 또다시 10%대 인상률을 주장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심적으로도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되면 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을 향한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레미콘을 운송하는 레미콘 믹서트럭은 기존 사업자가 번호판을 반납해야만 신규 사업자가 진입할 수 있다. 2009년 8월부터 영업용 믹서트럭의 신규등록을 제한(경쟁금지)한 데 따른 결과다. 이른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다. 이로 인해 레미콘 믹서트럭 시장에선 각종 편법·불법적인 관행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자리잡은 실정이다. 번호판을 수천만 원을 받고 팔기도 하고, 일부 사업자들은 번호판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하기도 한다. 또한 시장이 폐쇄적이다 보니,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사업자들을 협박하고, 고의적으로 그들의 영업을 방해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높은 수준의 레미콘 운반비 인상을 계속 고집하게 되면 언젠가는 이 같은 편법·불법적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올라 여론의 십중포화를 받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특정 직군만 힘든 때가 아니다. 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의 결정이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자칫 경기침체를 부추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만큼은 양보의 미덕을 발휘했으면 한다. [보증 사이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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