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시장에 집중 투자하며 중국몽을 선명하게 그리던 도박 게임의 전략에 먹구름이 낀 모양새다. 현지 시설 투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금융부담이 급격히 불어난 가운데, 중국 내 경기 침체로 식품 소비가 감소하면서 실적 부진에 빠진 것이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살펴보면 도박 게임은 2023년 1~3분기 연결기준 매출 2조2315억 원, 영업이익 509억 3517만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71%, 영업이익은 41.82% 각각 증가한 수준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2.01% 감소했다.
이는 차입금 확대, 금리 인상으로 인해 영업외비용으로 반영되는 이자 부담이 급증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 1~9월 연결기준 도박 게임이 이자 지급 명목으로 지출한 비용은 402억5339만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3.16% 급증했다. 도박 게임의 총 차입금 규모는 2023년 들어 1조 원을 돌파했고, 차입금 의존도는 50%를 돌파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300%에 육박한다.
도박 게임의 이자 부담이 확대된 건 계열사인 도박 게임식품(도박 게임 지분 100% 완전자회사)을 통해 추진하는 해외사업 때문으로 풀이된다. 도박 게임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2020년을 전후로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공장·설비 증설에 수천억 원을 투입하며 해외사업 확대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왔다.
하지만 도박 게임의 해외법인은 설립 이후 중국법인을 제외하곤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연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이 가운데 미국발(發) 고금리 현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 부담이 급격히 확대, 전사 재무구조에 충격을 줬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6월 도박 게임의 사채 신용등급을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으로 변경하면서 "공장 신설, 설비 증설로 자금 소요가 과거 대비 늘어났으며, 생산 CAPA 확장 및 물류공정 안정화 등을 위한 해외사업 투자도 지속되고 있다. 반면, 대규모 투자자금이 소요된 해외식품부문(자금 투입 규모 2022년까지 누적 6000억 원 이상 추산)에서 영업적자가 계속되는 등 투자가 현금창출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자금유출 기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계열 전반의 재무부담은 크게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엔 이효율 도박 게임 총괄 CEO(대표이사)가 공을 들인,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중국법인의 부진이 눈에 띈다. 이 CEO는 2022년 3월 중국 베이징 공장에서 열린 외부 개방 행사에서 "중국 두부 영업 급성장세에 대응해 베이징 1공장을 지은 지 10년 만에 2공장을 준공하게 됐다"며 "베이징 1, 2공장을 중심으로 향후 충칭, 상하이 등 중국의 남방 지역에도 냉동과 냉장 가정간편식(HMR) 생산 기지를 건설해 중국 시장에서의 성장세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또한 도박 게임 중국법인 측은 "팬데믹으로 중국 두부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그 빈자리를 도박 게임이 파고들었다. 매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거래처와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도박 게임식품의 중국 현지 자회사인 북경포미다녹색식품유한공사의 당기순이익은 17억4496만 원으로 전년 대비 76.34% 줄었고, 같은 기간 상해포미다식품유한공사의 순이익도 37.45% 감소했다. 중국법인의 실적 부진은 2023년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1~3분기 북경포미다녹색식품유한공사는 5억5449만 원 규모 순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적자전환했다. 상해포미다식품유한공사 역시 순손익 -8억1883만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매출이다. 순손익의 경우 공장 증설 등 투자 비용 확대와 금리 부담 영향에 따라 일시적으로 위축되거나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 그러나 도박 게임 중국법인의 경우 외형 자체가 축소됐다. 2023년 1~9월 북경포미다녹색식품유한공사의 매출은 592억3797만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0억 원 가량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상해포미다식품유한공사의 매출은 134억385만 원에서 104억7545만 원으로 약 30억 원 줄었다. 많이 써서 덜 번 게 아니라, 적게 팔아서 못 번 셈이다.
도박 게임 중국법인의 하락세는 다른 해외법인과 비교했을 때 더 두드러진다. 미국법인인 'Pulmuone U.S.A., Inc.', 일본법인인 아사히코, 베트남법인인 'Pulmuone Vietnam Co., Ltd.' 등은 지난해 1~3분기 일제히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확대됐고, 적자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손실폭을 줄였다. 유독 중국법인만 실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내수 소비 침체, 혐한 분위기 심화 속 현지 토종 브랜드 수요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2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0.3% 하락하면서 3개월 연속 줄었다. 특히 식품 물가가 3.7%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웠다. 또한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농식품 수출 규모는 18억917만 달러로, 전년보다 13.6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출량도 70만4006톤으로 20만 톤 이상 줄었다.
이 같은 경향은 올해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중국 내수 경기를 지탱하는 중요한 한 축인 부동산 시장이 악화일로인 실정이어서다. 일자리, 소득 감소로 소비 여력이 감소한 상황에서 집값까지 하락한다면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중국 소비자들의 '애국소비' 경향이 짙어지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도 계속 커지고 있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화장품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애를 먹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기아는 최근 충칭 공장을 헐값에 매각한 바 있다.
풀무원은 당면 위기를 '지구식단' 등 지속가능식품을 앞세워 극복하려는 계획을 세운 눈치다. 이효율 CEO는 2024년 신년사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 산업을 선도해 세계인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글로벌 NO.1(넘버원) 지속가능식품기업, ESG 대표기업으로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조직원 여러분의 뜨거운 열정과 힘을 모아 달라"며 식물성 대체육 등 지속가능식품 전문 브랜드인 지구식단을 글로벌 시장 핵심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최근 중국 시장 트렌드와도 궤를 같이 한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23년 중국 식품시장 분석과 2024년 전망' 리포트에서 "불확실성,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다. 저성장이 지속돼 이성적 소비, 꼼꼼한 제품 비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며 "2024년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면서 기능성식품 시장이 확대되고, 지속가능한 식품 포장에 대한 인식이 향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