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대출 문제에 대한 중장기 정책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13일 조선일보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재 정부가 부동산 개발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을 최소 20% 수준으로 높여 PF 건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시행사의 자본 요건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둬 사업장에서 발생한 부실이 시공사와 금융권으로 전이·확산되는 걸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우리나라 시행사들은 보통 전체 사업비 대비 자기자본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업에 착수한다. 개발을 위한 땅을 사들이는 과정에서부터 금융사에게 대출을 받고, 시공사 선정 이후엔 건설사의 보증을 통해 사업자금을 조달한다. 이 같은 구조 하에선 사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금융사와 건설사도 필연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방향성이다. 부동산 PF 사태에 단기 처방으로만 대응하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으면 한다.
올해 대한민국 경제의 뇌관이 된 부동산 PF 사태가 터진 건 단순히 시행사의 부족한 자본 여력 때문이 아니다. 사업성·수익성이 객관적으로 떨어지는 프로젝트임을 인지하고도 한탕을 챙기기 위해 사업을 강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고수익을 꾀하고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의 욕망에 탑승한 금융사와 건설사들이 근본 원인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통해 적발된 이들간 골프 접대,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자 사례 등이 그 방증이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사업성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준공이 되고, 미분양·미계약 물량이 해소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 믿음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부동산 공화국으로 만든 것이고, 시장 구성원들을 불나방처럼 부동산에 달려들게 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국내외 경기가 침체되고, 금리가 높아져 금융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원자재가 상승으로 공사비까지 인상될 땐 사업성이 부족한 프로젝트는 시한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린 그 폭탄 중 일부가 터진 걸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부동산 PF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사업성·수익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에 유동성이 흘러들어가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후분양제 전면 도입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혹자들은 후분양제로 가면 부동산 PF 대출 규모가 커져 오히려 리스크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대부분 시행사는 결국 수분양자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건물을 올리는데, 선분양이 안 되면 오직 대출로만 전체 사업비를 충당해야 하는 만큼, PF 규모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논리에는 허점이 있다. 분양 수익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시공사가 보증을 제대로 서줄 리 없고, 금융사들도 PF 대출을 무분별하게 늘릴 가능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업성·수익성이 우수해 미래 분양 수익이 확실시되는 프로젝트라면 시공사는 무리를 해서라도 보증을 설 테고, 금융권은 준공하는 날까지 충분한 자금을 빌려줄 것이다. 즉, 후분양제가 사업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를 본PF 전에 걸러내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브릿지론 단계에서도 증권·보험사·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사업성 판단 기준이 보다 강화될 공산이 크다. 심각한 부실이 발생하기 전에 옥석이 가려지는 셈이다.
물론,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다. 후분양제 전면 도입으로 사업성이 우수한 개발사업만 진행될 시 주택 공급 물량이 급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구가 지속 증가하는 경우에만 우려할 만한 일이다. 지금의 인구 감소 추세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여지가 상당하고, 인구가 줄어들수록 주택보급률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향후 멀지 않은 미래에는 주택 공급의 양보다는 공급되는 주택의 질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후분양제로 가야만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차기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분양제 도입은 최근 수년간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거론돼 왔던 이슈다. 정부 정책 입안자와 더불어, 각 정당 공약 설계자들이 부동산 PF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중 하나로 후분양제를 고민했으면 한다. [뉴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