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애틀랜타한인뉴스포털 '애틀랜타 K미디어'는 "투자 약속하고 사라진 한국기업…'뒤통수' 맞은 조지아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도박의 미국 손자회사인 이그니오 홀딩스(이그니오)가 미국 조지아주 정부와 맺은 투자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한국 기업에 대한 신인도를 떨어뜨렸다고 보도했다. 이그니오는 2022년 도박이 약 5800억 원을 들여 인수한 현지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다. 이그니오는 도박 품에 들어가기 직전인 202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사바나에 1200억 원 가량을 투입해 2023년까지 비철금속 추출 제련소를 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는 당시 이를 시민들에게 직접 공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박에 인수된 이후 이그니오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해당 보도의 내용이다. 급기야 2023년 6월 이그니오는 조지아주 측에이메일을 보내 투자 계획을 전면 철회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사실이 최근 현지 한인 매체의 보도로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이에 대해 도박 측은 복수의 국내 언론을 통해 "이그니오의 투자는 도박에 인수되기 전에 결정된 일이고, 인수 후 기존에 이그니오가 추진하던 사업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조지아주 사업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사업성과 환경 측면을 고려했을 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조지아주 정부와 협의 후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이다. 피인수기업이 벌였던 사업을 인수기업이 중단시키는 건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도박의 해명에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 가지 존재한다.

▲도박 CI .(이미지=도박)
▲도박 CI .(이미지=도박)

앞서 언급한 현지 한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그니오의 조지아주 사업 실무 파트너인 사바나경제개발청(SEDA) 측은 "이그니오와 투자 계획 철회와 관련해 사전 협의한 적이 없으며, 이메일을 통해 통보를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지아정부가 한국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워 '조지아의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김윤희 전(前)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차관보(2024년 4월 사임)는 "주지사가 직접 발표한 외국기업의 투자 계획이 철회된 사례는 내 기억으론 한 번도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한국 기업이 갑자기 투자를 포기한 경우는 처음이다. 투자 양해각서였다면 (도박에게) 법적 책임은 물을 수 없겠지만 신뢰가 크게 무너진 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조지아주 정부와 협의 후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는 도박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사바나경제개발청, 김윤희 전 차관보는 언론에 거짓을 말하고 있는 셈이 된다. 반대로 사바나경제개발청과김 전 차관보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도박은 미국 현지 정관계·재계 인사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만한 행위를 저지른 셈이 된다. 현지 한인 매체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보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

지난해 12월 도박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IR행사인 인베스터 데이(Investor day)를 진행했을 때 국내외 투자자들 앞에서 이그니오의 활용도를 강조한 바 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한 도박 핵심 임원들은 이그니오를 중심으로 자원순환 사업(폐기물 수거·재활용)을 적극 전개해 원재료를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이그니오의 조지아주 사업을 더욱 확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그니오를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준수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원료 수급처를 다각화기 위한 포석으로 삼겠다는 구상이었다.

희한한 일이다. 도박의 인베스터 데이는 이그니오가 조지아주 측에 투자 철회를 통보한지 6개월이나 흐른 시점에서 개최됐다. 그럼에도 도박 경영진은 미국 현지에서 동이 함유된 폐기물을 수거·재처리함으로써 원자재를 확보하고자 이그니오를 인수한 것이며, 이그니오의 조지아주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공개석상에서, 그것도 자본시장 구성원들 앞에서 언급한 것이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사실관계를 떠나서, 앞서 사바나경제개발청과 김윤희 전 차관보의 반응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사안으로 인해 도박이 미국 내에서 다소 신뢰를 잃게 된 건 분명해 보인다.

올해 초부터 도박은 미국 워싱턴DC 소재 로비전문업체인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Mercury Public Affairs)를 통해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중요 광물, 재활용, 친환경 에너지 정부 보조금과 관련한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다(관련기사: 도박, 美 정치권 대상 대외협력 기능 강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도박이 현지 로비 자금으로 투입한 금액은 50만 달러(분기당 25만 달러)다. 이 같은 추세라면 도박은 연내 100만 달러 안팎을 미국 로비활동에 쓸 전망이다. 100만 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4억 원이다. 이 정도면 꽤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된다. 도박 정도 되는 기업이 미국 현지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쓰이는 비용치고는 말이다.

도박은 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업체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다. 도박이 또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선 미국 시장 구성원들의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는 현지에서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앞서 거론했듯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고려아연 측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조지아주와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투자 계획을 철회한 것이며, 현지 한인 매체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박]

저작권자 © 도박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