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DX사업서 빚은 물의, 결자해지 자세 요구돼

"방산기업 최고경영자로서 참전용사의 용기와 희생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킨 대한민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방미한 정기선 HD(에이치디)현대그룹(현대중공업그룹) 부회장이 당시 현지 사업장에서 만난 한국전쟁 참전용사 가족들에게 한국 초청을 제안하면서 건넨 말이다. 그로부터 9개월 가량이 흐른 현재까지 이들이 방한했다는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초청이 이뤄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HD현대중공업에서 불거진 군사기밀 탈취 논란 관련 보도를 참전용사 가족들이 접한다면 상당히 실망스런 반응을 보일 게 분명해서다.
지난 19일 시사저널은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건물 1층 흡연실에서 군사기밀 건네받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 관련 군사기밀을 탈취해 회사 내부망에 공유한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2023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을 당시 판결문에 담긴 내용들을 단독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2012년 10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1차 검토 자료 △장보고-III 개념설계 중간 추진 현황 △장보고-III 사업 추진 기본 전략 수정안 △장보고-I 성능개량 선행연구 최종보고서 등 국가기밀 3급 자료를 8회 이상 빼냈다. 군(軍)비밀을 탈취한 장소도 해군본부 함정기술처장실, 방위사업청(방사청) 사무실, 국방기술품질원, HD현대중공업 매점 옆 흡연실 등 다양했다.
이들이 보안사고를 일으킨 이유는 돈이었다. 방산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는 데 활용하고자 함정 관련 자료 등 군사기밀을 빼돌린 것이다. 국가백년지대계인 안보를 생각하는 의로움보다는 눈 앞의 이익을 얻는 데에만 몰두한 것이니 그야말로 '견리망의'(見利忘義)의 표본이라 아니 할 수 없어 보인다. 견리망의하면 당장은 배를 두둑히 불릴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자멸하기 마련이다. HD현대중공업은 2022년 11월 본건 관련 1심 유죄 판결이 선고된 이후 방사청 발주 사업에 대해 감점 페널티를 받고 있다. 방사청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안 관련 법 위반 행위는 국가안보과 직결되는 엄중한 사항이다. 앞으로도 강화된 보안 감점을 지속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방사청은 현재 이 같은 군사기밀 탈취 행위 배경에 HD현대중공업 경영진의 조직적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건 이 같은 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도 HD현대중공업이 KDDX 사업 수주에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본의 생리를 따르는, 따를 수밖에 없는 기업이라 할 지라도 국가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도리를 지켜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방위 산업 관련 국가기밀을 탈취한 업체가 방산 수주전에 참가한다는 건 국민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처사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필자뿐일까. HD현대중공업, 그리고 발주자인 방사청은 결자해지의 자세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자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군사기밀을 탈취 당한 자가 기밀을 훔진 자에게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는 장면을 과연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방사청은 올해 하반기께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관련 사업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다음달 중엔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심의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안위를 저버린 이번 사안이 어떻게 종결될지 국민이 지켜볼 것이다. [온라인 도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