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계약 체결 사실을) 몰랐다. 당연히 대표이사인 저에게도 보고가 됐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 이를 최근에 알았고, 불명확해서 자세히 조사 중이다."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정몽규 HDC(에이치디씨)그룹 회장은 10년 전 HDC현대산업개발이 A씨와 통영 천연가스발전소 건설공사 공동추진협약'을 체결했다는 의혹에대해 의원들이 추궁하자 '모른다'고 했다.

이 계약서에는 HDC의 자회사인 통영에코파워가 발주한 LNG 발전사업 공사(산업통상자원부 제6차전력수급기본계획)를 A씨와 HDC현대산업개발이 2 대 8로 공동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사업 규모는 1조9000억 원, 개인에 불과한 A씨 몫으로 3800억 원이 책정된 것이다. 특이한 건 의무와 비용은 현산이 전부 부담하고, A씨는 사업 인허가 업무, 즉 대관 역할만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은 A씨에게 20%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고, 현재 A씨는 HDC그룹을 상대로 갑질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HDC현대산업개발에겐 불공정거래는 물론, 위 계약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본시장법 위반과 배임 혐의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 국감(공정거래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몽규 에이치디씨 그룹 도박 사이트이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 국감(공정거래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몽규 에이치디씨 그룹 회장이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조(兆)단위 프로젝트가 이토록 허무맹랑한 계약 하에 추진됐다는 점이, 특히 양자간 계약이 체결된 2013년 현대산업개발에서 대표이사 회장 역할을 수행했던 정몽규 회장이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알고도 국감장에서 모른다고 했다면 위증이고, 정말 몰랐다면 스스로 무능력을 인정한 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HDC현대산업개발 이사회는 정 회장을 비롯해 박창민 사장, 김재식 CFO 경영기획본부장, 김종수 영업본부장 등으로 구성됐다. 박창민 사장은 1999년 정 회장이 현대자동차에서 현산으로 몸을 옮긴 이후부터 건축본부 이사, 상무, 영업본부장 상무, 부사장 등 본격 승진 가도를 달린 바 있고, 김재식 CFO는 정 회장의 복심으로 평가되는 인물로 2014년 현대산업개발 사장으로 새롭게 임명됐으며사장직을 내려놓은 뒤엔 고문까지 맡아 예우를 받았다. 또한 김종수 영업본부장은 정 회장의 개인회사인 엠엔큐투자파트너스가 지분을 보유(약 10%)했던 HDC아이서비스의 상장 작업을 진두지휘했고, 은퇴 후엔 포니정재단 고문도 역임했다. 셋 모두 정 회장이 신뢰했던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정 회장이 비밀 계약에 대해서 몰랐다는 건 이들이 그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믿었던 부하에게 뒷통수를 맞은 꼴이나 다름이 없는 게 아닌가. 사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이니 CEO의 능력에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또 다른 가능성이 있긴 하다. 비밀 계약을 기획·추진했던 실무진이 아예 이사회에도 알리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가정 하에서도 정 회장은 무능을 자인한 셈이 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신성장동력으로 발전사업을 낙점하고 2010년 4월 사장 직속 플랜트사업실·플랜트팀을 신설했으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본부장 출신 전태주 전무를 플랜트사업실장으로 영입했다. 전 전무는 2014년까지 현산에 몸을 담은 인사다. 아울러 당시 통영에코파워 감사는 정 회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정경구 전 대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은 정 회장이 직접 수립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HDC현대산업개발의 신성장 전략 '비전 2016'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정 회장은 2010년 4월 "창사 40주년인 2016년까지 원전과 해외 플랜트,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 회장이 비밀 계약에 대해서 몰랐다는 건 비전 2016이 그의 영향력 밖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뜻인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니 경영가로서 이 같은 패착이 또 있을 수 있으랴.

이처럼 위증이 아니라면 무능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다행히 국회는 정 회장에게 체면을 세울 여지를 남겨줬다.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은 어제(지난 16일) 정무위 국감장에서 "내가 알기론 토씨 하나까지 다 회장님 지시를 받았다고 들었다"고 언급했다. 위증죄는 국감 종료 전까지 자백만 하면 면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위증 혐의로 고발을 당한 증인이 처벌을 받은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무능과 위증 사이에 선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다. [도박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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