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보증 사이트 추천 이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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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드림=연기홍 논설위원 ] `영원한 팝의 디바’ 올리비아 뉴튼존이 73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386 올드팬에 그녀는 팝의 요정이자 아련한 향수를 불러 오는 젊은 날의 우상이자 추억이었다. 또한, 7,80년대 당시의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서구 팝 문화의 심볼이며 사랑스런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녀는 이 모든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절대 어색하지 않았다.

올리비아 뉴튼존의 사망은 한 외신 보도에서 전한 “우리 세대에게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린다"는 표현 그대로이다.

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필자에게도 물론 올리비아 뉴튼존은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뚜렸한 기억이 남아있다. 교양관인가, 학생회관인가에서 그녀와 존 트라볼타 주연의 뮤지컬 영화 ‘그리스(Grease)’를 TV로 본 적이있다. TV화면에 비쳐진 상큼 발랄한 그녀의 모습과 영화속의 장면 하나 하나가 다 충격 그 자체였다.

금발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에 낭랑한 목소리로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를 신나게 춤추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에, 당시 국내를 휩쓴 디스코 열풍과 맞물려 열광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호주 출신인 올리비아 뉴튼 존은 'Let mebe there', `Physical’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고, 존 트라볼타와 뮤지컬 '그리스'에 출연해 영화배우로도 이름을 날렸다. 유소년기를 호주에서 보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가 된 그녀는 뮤지컬 ‘재너두(Xanadu)’ 주제곡 등 다수의 히트곡으로 그래미상까지 받으며 당대를 풍미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없지 않아, 지난 2010년에는 내한 공연을 통해 국내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올리비아 뉴튼존은 그녀가 평생 가장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거하던 남자친구 패트릭 맥더못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과 아픔을 준 사람이기도 했다. 올리비아 뉴튼존에게 가장 로맨틱했던 남자로 기억된 그는 지난 2005년 6월30일 LA에서 낚시배를 타고 떠난 맥더못은 해안으로 떠밀려온 운전면허증, 지갑 등만 남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 당시에 필자는 패트릭 맥더못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한 국내 방송사의 보도에 더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던 팝송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화를 그것도 라디오를 통해서만 간간히 흡수할 수 밖에 없었던 7,80년대에 청춘을 보낸 386 올드팬들에게 올리비아 뉴튼존은 시대의 아이콘이면서 서구 자본주의를 알리는 전도사이자 영원한 연인이었다.

그녀는 떠나갔다.

우리의 그리고 나의 그녀 올리비아 뉴튼존에게. “이젠 안녕, 굿 바이~”, “천국에서도 영원한 팝스타로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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