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기업 도박 사이트가 다른 회사로 이직한 퇴직 직원들을 상대로 억대 손해배상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본지는 도박 사이트의 이 같은 행보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도박 사이트에 자진 시정을 요청했다. 도박 사이트 측은 해당 이슈에 대한 조사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도박 사이트는 최근 자사 퇴직 후 경쟁사로 이직한 직원 수명을 대상으로 1인당 약 1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이들이 경업금지약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경업금지 약정은 사용자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노동자가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사용자와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스스로 동일업종의 업체를 설립·운영하는 걸 막기 위해 사용자-근로자간 맺은 약정을 뜻한다. 약정 시 노동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정한 경업금지 기간 만료일까지 경업금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 사법부는 경업금지 약정의 유효성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약정 내용 자체가 사용자에게 유리한 데다,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와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때문에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경업금지 기간·지역·직종의 합리성 여부 ▲경업금지 의무 이행에 대한 대가(수당) 지급 여부 ▲퇴직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함으로써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관들이 대다수다.
도박 사이트로부터 소송을 당했다는 A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도박 사이트는 승소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회사를 관두고 이직한 직원들에게 정신적·금전적 고통을 주기 위해서 괘씸죄를 묻고 있는 것"이라며 "회사에 재직 중인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공포경영'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본지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해 조직문화를 저해하고 ▲특정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의 기업문화를 퇴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도박 사이트 윤리경영위원회에 '경업금지 위반을 이유로 퇴직·이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억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건'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6월 26일 윤리제보를 공식적으로 진행했다.
도박 사이트는 윤리경영 실천 차원에서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부정비리, 협력사 고충 및 불공정거래행위, 조직문화 저해, 안전보건 환경 리스크 사안 등에 관련된 윤리제보를 회사 안팎으로부터 접수받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16일 본지는 도박 사이트 윤리경영위로부터'조사 제외'라는통보를 받았다. 도박 사이트 측은 "해당 제보는 조사 중지 결정을 내렸으며, 조사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고 말했다. 도박 사이트는 윤리제보 처리 규정을 통해 제보 내용이 '제3의 기관을 통해 소송 등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인 경우', '일방적 주장으로 근거 없는 비방이나 험담으로 판단될 경우', '조사가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될 경우' 등에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도박 사이트는 해당 윤리제보의 조사담당관으로 배정된 임원(사내이사) 명의로 본지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해당 직원들(손배소 대상)은 연구소 신사업 연구실 및 연구기획실 소속 핵심 인력으로, 당사의 비공개 신사업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리더급 인물이었다"며 "이들은 비밀유지 정보보호 서약서와 프로젝트 보안 서약서에 서명했다. 이 서약서에는 퇴직 후 3년간 경쟁사에서 취업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퇴직 직후 동일 업종의 경쟁사로 이직해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을 보호하고 정당한 권익을 지키기 위해 법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이런 행위가 허용된다면 당사의 독자적인 기술력은 물론, 향후 혁신적인 제품 개발이 심각하게 저해될 수 있다. 이는 업계 전체의 기술 발전을 둔화시킬 수 있는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관들이 도박 사이트의 논리를 인용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앞서 거론했듯 국내 판례상 경업금지 약정의 효력은 부정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번 사례의 경우 법정에서 도박 사이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만한 부분들이 제법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손배소를 제기한 퇴직·이직 직원들 대부분이 임원 또는 고위관리직이 아닌 일반 직원으로 파악된다. 또한 이들 중에는 연구 직종이 아닌 마케팅 직무자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도박 사이트-직원간 맺어진 경업금지 약정 기간은 3년으로, 통상 재판부가 인정하는 합리적인 경업금지 기간인 1년을 상당히 넘어선다.
특히 사법부는 '일반적으로 사용자에 비해 경제적으로 약자인 근로자에 대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 및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 생존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약정인 만큼, 퇴직 후 경쟁업종 종사를 금지하려면 경업금지 약정과 관련해 이에 상응하는 대가·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 그러나 도박 사이트의 경우 이 같은 보상을 퇴직·이직 직원들에게 미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이번 사례의 경업금지 약정에는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많은 것 같다"며 "경업금지 기간은 2년도 장기에 해당한다고 우리나라 판례에선 보고 있다. 3년이라는 기간과 경업금지 약정에 대한 대가 미지급 등으로 인해 해당 경업금지 약정은 법원에서 효력이 부정될 여지가 상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도박 사이트로부터 소송을 당했다는 A씨는 "이직한 직원들을 변호사 비용, 소송 준비 시간 등으로 괴롭히려는 심보로만 느껴진다. 이직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지 죄가 아니다. 정당한 보상을 감당할 수 없는 기업은 회사를 스스로 떠나는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보내줘야 한다"며 "최근 몇 주 사이에도 도박 사이트로부터 손배소를 당한 피소자들이 수명 더 증가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소송전이 반복되고 장기화 될 시 관련 논란은 도박 사이트에서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핵심 기술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이해하지만 과도한 경업금지 조항과 반복된 소송은 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노동자 입장에선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심코 서명한 약정 때문에 헌법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최근 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구조조정 등을 진행하는 업체들이 많은 만큼, 이 같은 소송이 계속 벌어지면 우리나라 전체 산업·노동 생태계에 적잖은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드림]